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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주변에서 종종 들렸던 단어가 하나 있다. 딩크족 (DINK).
무자녀 맞벌이 가족이라는데 사실 나와 웅쓰는 일부러 그럴 생각은 없었다. 아, 웅쓰는 참 잘생겼던 내 남편이다. ('겼'이라는 과거형 주의)
둘 다 남들 눈치 보거나 보통 사람들이 하는 대로 사는 것보다 그냥 둘이 마음먹은 대로 사는 스타일이다 보니 양가 부모님과 친지들, 지인들의 눈도장과 우레와 같은 박수를 한 몸에 받으며 인륜지대사를 치르기도 전에 나와 웅쓰는 덜컥 살림부터 합쳤다. 이유는 간단했다.
야! 같이 살면 금방 모아.
독립심 강한 26세 동갑내기 연인의 동거는 드디어 29세 인륜지대사로 이어졌다.
그뿐이다. 시간은 흐르고 서른아홉이 되어서도 나와 웅쓰는 여전히 둘이었다. 그저 우린 모든 것을 자연의 섭리에 맞길 뿐이었다.
서른아홉 어느 봄날. 일의 자리가 아홉인 시기에는 늘 그렇듯 쓸데없는 생각들이 회오리치기 마련인데 나 역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대로도 행복하지만 혹시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 빠진 경험은 없나? 내가 놓쳤거나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
답은 간단했다.
아기
그때부터였을까, 아니면 얼마 후 조카가 생기고나서부터 였을까.
건조했던 내 눈에 '아기'가 들어오고부터 달다구리 촉촉한 꿀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볼살에 묻혀 뭐라 하는지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연신 쉬지 않고 뻐끔거리는 입, 필사적으로 바닥과의 박치기를 이겨내기 위해 제 몸의 절반인 무거운 머리를 제어하는 능력, 토실토실함을 넘어 터질 것만 같은 독일 정통 비엔나소시지의 형상을 한 몸뚱이, 알 수는 없지만 이따금 극강의 쾌감을 느끼는 듯 "꺄악!" 하며 허공에 발사하는 웃음까지. 하나하나 신기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성인이라는 인간들이 아기 하나를 가운데 두고 또래 아기가 된 듯 재롱을 부리는 게 이상하지 않은 광경. 무엇보다 나의 엄마가 당신의 첫 손녀(동생의 딸)를 바라보는 시선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감정이 전달되고 있음을 느꼈다.
아이가 주는 힘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나는 웅쓰에게 말했다. "아이 갖을까? 아니, 갖자." 웅쓰가 말했다. "기다렸어. 니가 말할 때까지." 몸도 마음도 준비가 필요했을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했다.
우리는 그 길로 병원으로 향하기로 했다. 근데,,, 난임 치료는 대체 어딜 가야 하는 거야?
임신육아종합포털 아이사랑 홈페이지 -> 정부 지정 난임 시술 기관 -> 지역 선택 검색
다행히 남편과 나의 직장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고 과장 조금 보태서 발 좀 뻗어 몇 걸음 가면 있을 거리에 난임, 분만, 부인과 질환으로 명성이 있는 대규모 전문 병원이 있었다.
우리가 병원을 선택할 때 거리가 중요했던 이유는 내가 직장인이라는 점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거리'가 최고의 기준이었음을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배란일 확인과 난자 채취까지 내 몸상태에 따라 적게는 1주에 1번, 많게는 1주에 3번까지도 내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초음파상으로 아직 때가 안돼서 날짜 확정이 어렵네요. 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오셔야 될 것 같은데?"라는 말을 여러 번 들을 수 있다. 이식을 한 이후에도 착상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시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고려해서 병원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병원은 골랐겠다. 그럼 주치의는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나이가 많고 기저질환이 있거나 오랜 기간 자연임신이 되지 않은 경우 숙련도가 높은 베테랑 주치의를, 나이가 비교적 어리고 건강한 상태이며 자연임신이 되지 않은 기간이 짧은 사람의 경우 어떤 주치의를 선택해도 무방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주치의는 달라도 대부분 40대 이상의 선생님들이므로 병원 내 기술, 서비스, 경험은 모두 비슷하며 응급한 상황에 빠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숙련도에 따라 나타나는 차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숙련도가 높거나 유명한 주치의일수록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이 무한대로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을 꼭 고려해야 한다. 산부인과나 난임 병원의 경우 [대기 - 초음파 - 진료 - 수납 - 처치 및 처방]까지 기본 2시간 이상 소요라는 점 기억하자.
나는 나이도 많고 자연임신이 되지 않은 기간이 총 13년이었기 때문에 특이 또는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고려해 숙련도가 높은 주치의 선생님을 선택했다. 도를 닦는 마음으로 대기 시간을 보낼 것을 각오하고 말이다.
대망의 첫 진료 시작. 그런데 선생님의 말은 뜻밖이었다.
나이가 많은 것은 맞아요. 하지만 더 많으신 분도 계시긴 합니다. 허허허.
네에에에???
자연임신 시도, 인공수정, 시험관 순서대로 차근히 해봅시다. 저 믿으셔도 돼요.
그렇게 서른아홉의 절반이 지날 무렵.
자연임신 시도를 위한 택일을 받는 것으로 나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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